가톨릭평화방송라디오(열린세상오늘)고효숙:아프리카에 세워진 최정숙학교,고인의 사랑되살아나!
글쓴이 : 최기모
      조회 : 547회       작성일 : 2019-10-16 07:23  

[인터뷰] 고효숙 "아프리카에 세워진 `최정숙학교`, 고인의 사랑 되살아나"cpbc 김유리 기자(lucia@cpbc.co.kr) | 최종업데이트 : 2019-10-07 19:02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고효숙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 해외교류사업분과 위원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교육자이자 의사였던 여성 독립운동가 최정숙 베아트리체 아프리카 부룬디에 최정숙초교·최정숙여고 설립 하느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한 고인 정신 담아 부룬디 아이들, 스스로 ‘최정숙 키즈’라 부르며 설립자 정신 이어가 [인터뷰 전문]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부룬디에 한국 사람의 이름을 내건 고등학교와 초등학교가 건립됐습니다. 최정숙여자고등학교와 최정숙 초등학교인데요. 학교 건립을 추진한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의 고효숙 해외교류사업분과 위원장 연결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고효숙 위원장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어떤 분이시기에 아프리카에 한국인의 이름을 붙인 학교까지 세웠을까, 궁금해 하시는 분들 계실 것 같아요. 최정숙님 어떤 분이셨습니까? ▶최정숙 선생님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 시절에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셔서 옥고를 치르셨고 일제강점기 학교 현장에서 교육활동을 펼치시면서 독립을 염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후 38세 늦은 나이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해서 의사선생님이 되셨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고향인 제주에서 의사로서 민족교육가로서 한평생 헌신, 봉사하신 분이십니다. ▷제가 알기로는 제주도 초대 교육감도 지내시고 부모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천주교 세례를 받으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신자가 되신 겁니까? ▶1909년 라쿠르 신부님에 의해서 신성여학교가 설립되었는데요. 최정숙 선생님은 첫 입학생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자상한 아버지 같은 신부님 희생과 봉사로 고귀한 삶을 살아가는 살트르 바오로의 수녀님들로부터 감명을 받아서 12살에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아트리체라는 세례명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사셨습니다. ▷신앙인으로서도 어떻게 사셨는지 궁금해요. 독립운동가, 교육자로서는 많은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신앙인으로서는 어떻게 사셨습니까? ▶선생님은 해방과 더불어서 제주 여성을 위해서 폐교되었던 자신의 모교 신성여학교를 재건하셨는데요. 선생님은 이 학교의 교훈을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경천애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선생님은 교훈 그대로 삶으로 보여주신 사랑의 실천자이십니다.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고 또 최정숙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서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해 오신 겁니까? ▶저희들도 선생님이 재건해 주신 신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요. 이 혜택을 선생님이 하셨던 그대로 가난한 나라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최정숙여학교설립이라는 꿈을 꾸며 5년 전부터 설립자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바로 2년 전에는 비영리단체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을 결성해서 더욱 확대시켜 나간 것이죠. 우리가 한 큰일은 부룬디에 기숙형 기술학교, 아프리카 최초의 국립여자고등학교인 최정숙여고를 설립했고 올 2월에는 2년간의 노력 끝에 최정숙 선생님을 기억하는 분들을 만나서 구술자료집을 편찬했고요. 그리고 내전으로 부서진 무쿤쿠 부룬디 무쿤쿠초등학교를 최정숙 선생님의 이름으로 재건하여 부룬디를 방문하고 열흘 전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최정숙 베아트리체 선생님과 아프리카가 어떤 인연이 있는지, 또 어떻게 아프리카 그 많은 나라 가운데 부룬디에 학교를 건립할 생각을 하셨어요. ▶건립은 저희들과 함께한 한국희망재단이 추천한 국가가 부룬디였지만 저도 왜 하필 최정숙 선생님이 부룬디에 가고 싶어 했을까 굉장히 궁금했거든요. 부룬디를 방문하고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부룬디가 너무나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에 선생님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던 겁니다. 따라서 최정숙 여고와 최정숙초등학교는 가난한 부룬디 사람들을 위해서 마련하신 하느님과 최정숙 선생님의 사랑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렇군요. 저희도 한국희망재단이 부룬디의 마을물길 이끼사업도 하고 샘물도 파고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재단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군요. 최정숙여자고등학교 말씀하신 것처럼 지난해 개교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초등학교는 지난 9월 초에 개교를 해서 얼마 전에 다녀오셨으니까 둘러보시니까 어떠시던가요. 두 학교 모두 어떻습니까? 학생들이 잘 지내고 있습니까?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정막 최정숙여고와 최정숙초등학교 아이들과의 만남이 제 인생에 가장 행복하고 기뻤습니다. 아이들의 눈빛에서 희망이 가득찬 눈망울을 보았거든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지난 날 최정숙 선생님이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교육의 길을 택하셨는데 그때 선생님의 선택도 옳았고 지금 선생님을 기리며 가난한 나라에 학교를 세워 선물한 우리들의 선택도 옳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가정에 그 사회에 미래를 선물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다는 생각에 꿈을 꾸는 아이들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아서 참 좋았습니다. ▷앞서 아프리카 최초 국립여자고등학교라고 말씀해 주셨잖아요. 그러면 이게 기숙사도 있고 학생식당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그런 시설이 마련돼 있습니까? ▶처음에는 그런 시설이 없이 작년에 준공을 했는데 올해 제주도 도민, 도청, 교육청 그리고 개인후원자 최정숙 선생님의 제자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많이 확보가 됐습니다. 도서실도 확보가 됐고 실험실 그다음에 그들이 양계장, 부화장 이런 기반시설을 이번에 많이 갖추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부룬디 학교 두 곳 말고도 쪽방 후원, 조선족 청소년 책보내기와 같은 많은 일들을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에서 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그런 기금들 어떻게 마련을 하셨어요. ▶저희들은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데요. 나눔의 실천에 동참하는 한마디로 개미군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지만 함께하면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많은 제주도 도민들이 함께 해주고 있는데요. 학교 설립에는 큰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개미군단과 함께 특별후원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최정숙 여고에는 6명의 특별후원자가 그리고 이번에 재건된 최정숙초등학교에는 13명의 특별후원자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분 말고도 아프리카 부룬디에 최정숙학교가 건립되기까지 많은 분들이 응원하고 정성을 보태기도 했을 것 같아요. 어땠습니까? ▶이번 방문에는 교회에서 함께해 주어서 더 뜻이 깊었습니다. 제주교구 여성연합회에서 바자회를 열어서 최정숙초등학교 1200명에게 생애최초의 신발을 선물해 주었고 무쿤쿠 성당의 의자구입비로 2,000불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저희 본당인 연동성당에서도 교우분들이 한마음이 되어서 옷가지, 볼펜 12상자의 선물을 무쿤쿠 교우분들에게 전달했고 전자 오르겐 두 점은 최정숙여고에 전달했습니다. ▷고효숙 위원장님 계신 곳이 본당이 연동본당이네요. 참 좋은 일 많이 하셨습니다. 지금 제가 인터뷰 도중에 꼭 소개를 하고 싶어서요. 실비아님이 빵톡 문자를 주셨거든요. ‘최정숙 선생님 저희 딸 비비안나가 다니는 신성여고 초대 교장선생님이십니다.’ 이런 문자 인터뷰 듣고 주신 것 같아요. 제주에서 주신 것 같고요. 부룬디 최정숙여자고등학교 또 초등학교 학생들이 최정숙 선생님의 설립자의 정신을 어떻게 이어나갔으면 하십니까? ▶이미 부룬디에 최정숙여고 아이들이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최정숙여고 학생들은 최정숙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교가로 만들어 부르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저희들에게 자신들은 최정숙 키즈. 최정숙 아이들이다. 그리고 부룬디의 미래인 여성인재로 잘 커가겠다는 다짐을 전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최정숙, 최정숙.’ 선생님을 막 환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최정숙 선생님이 부룬디에서 되살아난 느낌을 저는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되살려내고 있네요.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학교에서 아이들이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나서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거. 최정숙 선생님의 바람이자 우리의 바람입니다. ▷그게 바로 최정숙 선생님이 후대에도 꼭 이어지기를 바라는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하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아프리카 부룬디의 최정숙여자고등학교 또 최정숙초등학교를 건립한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의 해외교류사업분과 고효숙 위원장님과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위원장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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